백두대간 기운의 부활
Written by Claude 3.0 Opus
상덕 일행은 경상북도 영주로 향했다. 차를 몰고 깊은 산중을 달렸다. 주변은 아직 눈이 남아있는 겨울 풍경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명당자리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 그곳에는 오래된 사당이 있었다.사당 안과 영역 밖의 영역인 주술서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이 사당이 바로 일본군이 찾아왔던 곳이라고 추정했다.
"여긴 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위를 잘 살펴봐야겠어요."
화림이 말했다. 네 사람은 주변을 삼삼오오 사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별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할 것 같네요."
상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봉길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요! 여기 무언가가 있습니다!"
봉길이 부르는 곳으로 가보니 땅에 묻혀있던 벽돌 조각들이 나왔다. 그 벽돌 위에는 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기하학 문양 같기도 하고, 문자 같기도 합니다. 아마 일종의 암호 같은 게 아닐까요?"
봉길의 추측에 화림도 동의했다.
"맞아요. 이건 분명 암호에요. 좀 있다가 풀어보면 되겠죠?"
일행은 그 암호가 새겨진 벽돌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그날은 인근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호텔 방에서 봉길과 화림은 암호 해독에 착수했다. 오랜 시간 고심 끝에 그들은 암호를 해독해냈다.
"여기에 '육곳 옹기'라는 단어가 보이네요?"
"맞아요. 그리고 저쪽에는 '일곱 현무'라는 글자도 있네요."
화림과 봉길은 해독 결과를 종합했다. 그러자 '육곳 옹기와 일곱 현무를 더하면 금룡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왔다.
"이건 분명 그 주술서 내용의 일부일 거예요. 그렇다면 금룡의 길이란..."
"백두대간을 가리키는 말일 겁니다. 그렇다면 금룡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있을 육곳 옹기와 일곱 현무를 합쳐야 한다는 뜻이 되겠죠."
봉길의 해석에 화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상덕과 영근에게 설명했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건 도자기랑 뭔가 일곱 개인 거예요?"
영근이 어리둥절했지만 상덕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옹기와 현무는 비유적 표현일 뿐이겠죠. 진짜 찾아야 할 건 아마 육개의 물건과 일곱 개의 다른 물건일 거예요."
"맞습니다. 상덕님 말씀처럼 그 물건들을 찾으면 금룡의 길, 즉 백두대간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림의 말에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암호를 해독해 낸 것만으로도 이번 여정에서 한 발자국 더 전진한 셈이었다.
이튿날 아침, 네 사람은 암호 조각이 묻혀 있던 곳을 다시 찾아갔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별다른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봉길이 발을 구르며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여길 더 이상 뒤지는 건 소용없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봐도 봐도 여기선 아무 것도 나오지 않네요."
화림도 동의했다. 그러자 영근이 생각했다.
"여기는 그냥 암호가 있던 장소일 뿐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아마 또 다른 데 있을지 모르죠."
그제서야 네 사람은 정답을 깨달았다. 저 암호는 진짜 장소를 가리키는 단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네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육곳 옹기, 일곱 현무에 대해 캐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할머니가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저 근처 백년 묵은 영묘 있는데, 그 주위에 육개의 부적이 묻혀 있다는 말이 있죠. 그리고 그 부적에는 일곱 개의 수호 신령이 배치되어 있다나 뭐라나..."
할머니의 말에 상덕은 곧바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육곳 옹기는 육곳 부적을 뜻하고, 일곱 현무는 그 부적에 새겨진 일곱 신령을 말하는 구나!'
상덕은 곧장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화림과 봉길도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할머니께서 영묘라고 하셨으니, 분명 일본군 묘를 가리키는 말일 거예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그 일본군 묘일 것 같네요."
"일본군 묘라...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기로 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근이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해서 네 사람은 백년 묵은 일본군 묘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묻고 조사하며 그 영묘의 위치를 가늠해나갔다. 수많은 실마리를 찾아가며 이윽고 그 묘가 있을 법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깊은 산속 계곡, 주변은 아직 겨울 눈꽃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그 속에서 오래된 돌무덤들이 보였다. 비석마다 한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네 사람은 조심스레 돌무덤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던 중 봉길이 돌부처 하나를 발견했다. 그 부처 주위로는 금줄이 아홉 번 감겨 있었다. 금줄 하나하나 사이에는 여러 문양과 부적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인가 봅니다. 육곳 부적과 일곱 신령이 새겨진 금줄이 틀림없어요."
화림의 말에 상덕과 영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주위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봉길이 멀리서 신기한 모습을 발견했다. 돌부처 사이로 낡은 군복 차림에 군모를 쓴 노인이 앉아 있었다. 네 사람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노인이 그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계시는 겐가?"
그 노인의 말투는 어딘가 낯설었다. 일본 사투리 같기도 했다. 노인은 이어 말을 이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의 넋이 깃든 자리이옵니다. 좋든 싫든 우리가 지켜온 대지이옵니더..."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돌부처를 쓰다듬었다.
"용케도 신령님들이 계시고, 아직도 함부로 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더니..."
상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일본군 묘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 일대가 그 묘터인지요?"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봉길이 이번에는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깃든 혼령을 불러내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육곳 부적과 일곱 신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노인은 듣고만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것들은 반드시 신중히 다뤄야 할 것이옵니다. 이 고장은 그야말로 조상들의 힘과 영혼이 깃든 자리이옵거늘..."
노인은 네 사람을 돌부처 앞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부적이 새겨진 금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금줄에는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신령들의 주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육곳 부적이라 불리는 이 금줄을 풀면 안 됩니다."
그 말에 화림이 궁금해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부적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혼령을 불러낼 수 없을 텐데요."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부적은 육곳의 힘이 모여 빚어진 것입니다. 그 부적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일곱 현무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일곱 현무라니,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봉길의 질문에 노인이 설명을 이었다.
"이 일대에는 일곱 개의 큰 바위산이 있습니다. 그 바위산 아래에는 일곱 용의 힘이 서려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현무입니다."
"그렇다면 저 부적과 그 일곱 현무의 힘을 합치면 금룡의 길이 열린다는 뜻이군요?"
상덕이 깨달았다. 노인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고하오니 그 힘은 함부로 불러내서는 안 됩니다. 저 일곱 현무에는 끔찍한 혼령들이 서려 있다나이다."
영근이 따지듯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혼령들을 불러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요? 그럴 때는 어쩌면 좋죠?"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럴 경우에는 살아있는 혼백을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화림이 의아해 했다.
"살아있는 혼백이란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곧 그 뜻을 알게 되실 겁니다. 만일 그 일곱 현무를 부르신다면..."
노인의 말이 그친 뒤에도 네 사람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이렇게 생각했다.
'일단 육곳 부적과 일곱 현무를 합치는 게 급선무겠지. 그래야 우리가 찾던 금룡의 길을 열 수 있을 터.'
네 사람은 곧장 일곱 현무가 있다는 바위산을 찾아나섰다. 노인의 말대로 그 일대에 일곱 개의 큰 바위산이 있었다. 그 바위산 주변을 돌아다니며 네 사람은 하나씩 조사해 나갔다.
첫 번째 바위산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바위산에 가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위산 정상부근에 커다란 바위 동굴이 있었다. 네 사람은 그 동굴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굴 안은 매우 넓고 높았다. 그리고 천장 가운데에는 붉은 주술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봉길이 그 문양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일종의 주술 진법인 것 같습니다. 아마 현무를 부르는 법이 여기에 적혀 있는 모양이군요."
화림도 동의했다.
"맞아요. 그 진법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이 바로 두 번째 현무가 있는 곳인 것 같네요."
상덕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야 할 살아있는 혼백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어차피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일단은 이렇게 계속 현무의 자리를 찾아가는 수밖에요."
영근의 말대로 네 사람은 세 번째, 네 번째 바위산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일곱 번째 바위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동굴 안에는 커다란 봉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누런 해골이 있었다. 바로 그 주변에 피범벅이 된 사체 몇 구가 널부러져 있었다. 지켜보던 상덕이 소스라치며 입을 열었다.
"이게... 살아있는 혼백이란 건가?"
그러자 영근이 비꼬듯 말했다.
"맞아요. 그리고 살아있는 시신요. 아니 산 송곳이랄까?"
그의 빈정대는 말투에 봉길이 화를 내며 말렸다.
"이 자리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영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네 사람은 모두가 이 자리의 강렬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는 걸 느꼈다. 화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혹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의식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자 사체 옆에 있던 해골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소리에 네 사람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해골이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마침내 금룡의 길을 열기 위한 최후의 관문에 도달하셨군요."
상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이곳 현무를 지키는 존재입니다. 사실 나는 한 인간의 영혼이었지만, 일본군이 이곳에서 음험한 주술을 부려 영혼만 남겨두고 육신은 버렸습니다."
봉길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주변에 있는 사체들은..."
"그 주술의 희생자들입니다. 일본군이 그들의 혼백을 꺼내 나를 부르는데 사용했죠."
"혼백이라... 그래서 살아있는 혼백이란 말씀이셨군요."
화림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해골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네 분들이 진정 금룡의 길을 열고 싶다면, 여기서 그 혼백 의식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곱 현무의 힘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네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이렇게 멀리 왔다면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결국 상덕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 의식을 치르겠습니다."
이 말에 해골은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오래간만에 이 의식을 치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지만 경고하오니 이 의식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혹여 실패하신다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상덕의 말에 해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하라고 일러왔다. 의식을 위해 피의 제단이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해골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동굴 한가운데에 거대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사체들을 모았다. 그리고 병풍으로 에워싸고 촛대와 향로를 준비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밤이 깊어갔다. 해골이 네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혼백 부르기 주문을 외우면 그에 맞추어 동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사람은 긴장한 채 부복했다. 그리고 해골의 부르짖음이 동굴에 울려퍼졌다.
"피의 제단이여, 열리라! 혼백들이여, 나와라!"
그 순간 사체들에서 푸른 안개 같은 것들이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 같면서도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들은 해골을 향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봉길이 해골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나요?"
"그렇습니다. 대신 노래를 부르셔야 합니다."
"노래요?"
"과거 일본군이 행했던 노래입니다. 그 악마의 노래를 부르면 혼백들이 모두 모여들 것입니다."
해골이 노랫말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네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끝내 오늘 파죽지세로 적진을 기어가며
태평양의 유정을 호령하리
창공에 우리 기 높이 뻗쳐
육해공에서 대영광을 구가하리라..."
그렇게 악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네 사람은 노래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혼백들도 그들을 에워싸며 어둠 속을 휘젓고 다녔다.
"야, 여기 혼백 한 마리는 또 없나봐!"
영근의 외침에 상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사체 하나를 발견했다. 영근이 그 사체를 주섬주섬 끌어다가 제단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사체에서도 혼백 하나가 나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진정 악랄한 혼백들이구나..."
화림의 말에 상덕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근데 여기 더 있는 것 같아요."
상덕의 눈길이 피범벅 사체들을 향했다. 그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혼백들이 사체를 빠져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절규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게 생생한 영혼의 절규소리였다. 네 사람이 주위를 살펴보니 또 다른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번에는 그 사체에서 수많은 혼백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리고는 똬리를 틀며 날뛰었다.
그 혼백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해골의 촉수 같기도 했고, 핏덩이 같기도 했으며, 괴기한 동물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흉측한 모습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절규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선명하게 생생한 영혼의 절규소리였다. 네 사람이 주위를 살펴보니 더 많은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체에서 수많은 혼백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리고는 똬리를 틀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혼백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해골의 촉수 같기도 했고, 핏덩이 같기도 했으며, 괴기한 동물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흉측한 모습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영근이 허술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봉길 역시 경악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어!"
상덕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악마의 노래를 불렀다.
"장엄한 우리의 출정이여
전율케 하는 우리 포성에 적병은 섬뜩한들 어떠리
천하무적의 용사다워라
억만병정을 이끌고 우리 서슴없이 출정하리라"
그렇게 악마의 노래가 계속되었다. 혼백들은 흔들리며 더욱 격렬해졌다. 영근은 혼백들이 너무 무서워 노래를 잠시 멈췄다가 상덕의 노려보는 시선을 받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한편 해골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피바다여! 혼백이여! 나를 받아들여라!"
점점 혼백의 수가 늘어났다. 대여섯 구가 넘어 보였다. 혼백들은 모두 해골 주위로 모여들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윽고 해골이 외쳤다.
"이제 그만! 악마의 노래를 멈추시오!"
네 사람이 입을 봉하자 혼백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해골이 말을 이었다.
"이 혼백들이 바로 일곱 현무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집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해골은 갑자기 주문을 외웠다. 네 사람도 모르는 생소한 주문이었다. 그러자 혼백들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혼백의 수만큼 주위에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면서 돌풍까지 일었다.
"결집하라! 현무대장군이여!"
해골의 외침에 혼백들이 마치 회오리치듯 돌더니, 드디어 거대한 괴물 형상을 이루었다. 네 사람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꿇었다. 그 거대한 형상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현무의 정체란 말인가..."
화림의 중얼거림에 상덕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 그렇군..."
"우워어어어어!!!!"
괴물의 형상이 입을 벌려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동굴이 꿈틀거렸다. 네 사람은 공포에 떨며 몸을 움츠리기만 했다.
그때 해골이 다시 한번 외쳤다.
"나를 받아들여라!! 나는 너의 주인이다!!"
괴물 형상이 크게 돌며 해골을 향해 회오리쳐 들어갔다. 해골 주위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네 사람은 그 광경을 아연실색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곧 회오리바람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골 자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해골이 서서히 일어나며 괴물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형상을 하고서 해골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괴물의 음성이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상덕이 겁에 질려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곧 현무다. 우리 조상들의 힘이 서려 있는 그 일곱 용들의 화신이다."
봉길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알겠느냐. 이 내 손에 살아있는 혼백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은 금룡의 길을 열 수 있다."
화림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죽여서라도 혼백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냐?"
영근의 물음에 현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의 혼백을 바쳐야 한다. 그게 아니면 금룡의 길은 열릴 수 없다."
네 사람은 함구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현무가 외쳤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금룡의 길을 열지 않는다면 눈앞에 닥칠 화는 가히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 순간 영근이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저를 희생해주세요..."
"영근 형님!"
상덕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봉길 역시 영근을 말렸다.
"말리시오. 우리 이 길을 떠나야 한다면 여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영근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너무 오래 살았다. 젊은 녀석들이 앞으로 더 살 생을 마련해야지. 이것들아, 내 목숨을 가져가거라!"
영근은 갑자기 손목을 그었다.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 피를 모으던 현무는 크게 방추산을 돌며 기뻐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혼백이다! 그대가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현무는 영근의 몸을 향해 회오리를 일으켰다. 삽시간에 영근의 육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영혼만이 남았다. 마치 안개 같은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해골의 몸으로 들어갔다.
해골의 형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두 개의 주춧돌처럼 생긴 것이 해골 위에 떠올랐다. 그리고 네 개의 발이 돋아났다. 점점 형상은 사나워져갔다.
"이것이... 너희가 원하던 것이었느냐?"
거대한 용 모양의 형상이 네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무가 자신의 형상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것이 우리가 구하던 현무였습니다."
상덕이 힘겹게 대답했다. 봉길도 동의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근 형님의 혼백을 통해..."
"영근이라는 자는 나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제 그의 육신은 영원히 죽은 것이다."
네 사람 모두 경악했다. 봉길이 절규했다.
"잠깐만요! 그럼 영근 형님은..."
"그의 존재 자체가 이제 내 안에 있다. 그가 영생할 순 없다."
화림도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때 현무가 입을 열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너희는 육곳 부적을 풀어 이 현무와 합치면 된다."
봉길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영근 형님은..."
"너희가 살아가는 한 그의 넋은 여기에 영원히 잡혀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금룡의 길을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너희는 너희대로 가는 것뿐이다."
그 말에 상덕이 물었다.
"영근 형님의 혼백이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우리가 무슨 수확이 있겠습니까? 금룡의 길을 열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요!"
현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대신 이걸 들어라..."
네 사람이 기대에 찬 눈길로 현무를 쳐다보았다. 현무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옛적부터 백두대간을 지키던 산 귀신들이 있었다. 일곱 신령이 각기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수호하고 있었지. 그런데 일본이 대한민국을 강점하면서 그 신령들을 모두 제압하고 쇠말뚝을 꽂았던 것이다."
"대체 그 일곱 신령이란 게..."
화림의 질문에 현무가 답했다.
"동해에서 피어오른 백두산 신령, 서해에서 날아온 지리산 신령, 남해바다를 지키던 한라산 신령, 그리고 중앙에서 솟아오른 태백산 신령. 이 네 신령을 머리 삼아 주변에서 작은 신령 셋이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이 일곱 신령이 백두대간을 수호하던 존재들이었다."
네 사람은 숨죽여 현무의 말을 경청했다. 현무가 이어갔다.
"하지만 일본이 그 신령들을 모조리 제압한 뒤 쇠말뚝을 꽂았다. 그리고 곳곳에 군인들의 묘를 만들었지. 그 묘에 그들의 넋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모두 사그라지면서 우리 삼한에 재앙이 닥치게 되었다."
상덕이 깨닫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오니를 부른 거구나..."
"그렇다. 하지만 오니는 쇠말뚝 하나만 뽑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나머지 쇠말뚝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우리 한반도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화림의 말에 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희가 진정으로 금룡의 길을 열고 싶다면, 일본군 묘에 갇힌 그 일곱 신령의 넋을 건져내야 한다."
상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고 위험한 싸움을 더 벌여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너희가 완전히 정화의 길을 걷지
"그렇다. 너희가 완전히 정화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우리 한반도는 영원히 기운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현무의 말에 네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겪었던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두려움과 고민이 교차했다. 하지만 이내 상덕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걷겠습니다."
그 말에 봉길과 화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근의 대가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무도 만족한 듯 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마지막 과제를 주겠다."
이내 현무의 입에서 뭉게구름 같은 것이 나왔다. 그것은 온몸에 이리저리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끝내 네 개의 공처럼 변했다. 그 네 개의 공은 네 사람 앞에 멈추었다.
"저건 대체 뭐죠?"
봉길이 궁금해 했다. 현무가 설명했다.
"너희가 일곱 신령의 넋을 건져내기 위해서는 쇠말뚝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쇠말뚝의 자리는 바로 이 공에 적혀 있다. 하지만 너희가 아직 신령의 가호를 받지 않은 탓에 글자를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덕의 물음에 현무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는 신령의 가호를 받기 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각자 이 공을 받아 전국을 방방곡곡 돌며 신령의 성소를 찾아내어라. 신령의 가호를 입게 되면 저 공에 적힌 쇠말뚝 위치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네 사람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각자 한 개의 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공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그들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상덕은 눈을 떴을 때 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설산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설산의 정상 어딘가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상덕은 그 소리를 따라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자 끝내 설산 정상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안에는 긴 몸통을 가진 뭔가가 있었다. 바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거대한 용의 형상이었다.
"바로 그 화신이 동해 백두산 신령일 거야. 내가 찾아야 할 신령이구나!"
그때였다. 그 거대한 용 바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용은 살아 있었다!
"네가 과연 나의 가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보여 다오."
상덕은 깜짝 놀랐다. 살아있는 신령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령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삼척 화산 용암을 피해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물음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 만일 실패한다면 너는 이 설산에 남겨져 영원히 얼어붙고 말 것이다!"
상덕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물으실 건가요?"
"첫 번째 물음! 칼을 든 자는 칼로 죽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상덕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과 폭력으로 남을 해치면 결국 제 몸에 상처만 남을 뿐입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물음을 들어라!"
신령의 물음은 계속되었다. 화산 용암을 피하며 바위를 걸었고, 그 와중에도 물음에 답해야만 했다. 상덕은 때로는 머뭇거리며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매서운 바람이 일어나 그의 발걸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바위를 건너갔다.
마지막 물음에 상덕은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피폐만을 부른다."
신령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불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 불길은 상덕을 녹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정화시켰다. 안개 같은 것이 상덕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잠시 후 상덕의 눈에 공이 바람에 흔들리며 어떤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두산 신령의 가호를 받았구나. 이제 공에 적힌 쇠말뚝 좌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상덕은 기뻐하며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그가 받은 신령의 가호 덕분에 드디어 비로소 금룡의 길을 향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봉길 또한 설산 어딘가에 있었다. 주변은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설경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낯선 환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 멀리서 거대한 덩치의 형상이 비쳤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손바닥만 한 키에 장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시오?"
봉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 대신 그 작은 장수는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는 그 화살을 봉길 앞에 떨어트렸다. 나무 화살촉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바위 머리에 올라가거라. 그리고 네 가문의 창시자인 나를, 지리산 산신을 발견하여라.'
봉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그의 시야에 넓은 바위산이 펼쳐졌다. 그렇게 봉길은 그 바위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돌출되어 있는 바위를 발판 삼아 너무도 힘겹게 등반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바위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봉길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넓은 바위산 자체가 바로 지리산 신령의 형상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하산하지 않고 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마침내 정상 부근에 이르렀을 때, 봉길은 바위 능선이 마치 사람 형상을 한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를 알아보겠나? 나는 바로 서해의 영령, 지리산 신이로다!"
순식간에 거대한 크기로 변한 바위 형상이 봉길을 내려다보았다. 봉길은 겁에 질려 바위에 비트려 앉고 말았다.
"너는 과연 나의 가호를 입을 자격이 있느냐? 만일 실패한다면 이 바위에 갇혀 영원히 돌이 되고 말 것이다!"
봉길도 영문을 몰랐지만, 도리어 가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신령의 시험에 임했다.
시험은 단순했다. 봉길 앞에 바위 3개가 놓였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만 따라가면 충분했다. 그렇게 봉길은 바위를 옮겨 나가며 글자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녹록치 않은 방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거센 바람이 불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봉길은 오래 전 야구를 할 때처럼 근력을 다해 바위를 옮기며 해답을 찾아나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산에 오르는 자, 그 기개를 대견히 여겨라"라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지리산 신령은 봉길의 주위를 선밀화 불꽃으로 휘감았다. 봉길의 온몸이 정화되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공에는 글자들이 아릿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림은 한라산으로 이동했다. 산의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짙은 안개로 가득했다. 주변은 보이지 않고 다만 섬섬옥수로 흐르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그때 천둥 같은 고제 소리가 들렸다. 화림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물고기다리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림은 제 발밑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물이 흘렀다. 그 물은 실제로 바다인 것 같았다.
안개가 가셨을 때 드디어 화림은 완전히 그 물고기 형상을 볼 수 있었다. 그 형상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너는 나의 가호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
물고기가 인간의 말을 했다. 화림은 물고기의 말에 기가 질렸다.
"그대가 만일 내 물음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천 년 세월 동안 내 물고기 형상의 배 속에 갇히게 되리라."
화림은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멀리 온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힘써 물음에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들어라! 첫 번째 물음이로다!"
화림은 그 이후 7번에 걸쳐 물음을 받았다. 마지막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다는 위대하고 너그럽지만, 그렇기에 바다가 얕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 위대함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옳다. 너는 나의 가호를 받을 만하구나!"
한라산 신령의 외침과 함께 주위로 환한 빛이 퍼졌다. 여명을 방불케 하는 그 황홀한 빛줄기가 화림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상덕 일행은 일본군 묘 입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영근이 그렇게 스스로 혼백을 바치고 떠난 것은 정녕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의 희생이 있었기에 일행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영근이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봉길이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화림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근이 형은 우리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으셨어요. 절대 잊지 말아야죠."
상덕 역시 가슴이 저리고 아팠지만, 동료들을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리 모두 영근이 형의 헌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자꾸나. 하지만 지금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나아가야 할 때야. 우리가 물러설 순 없어."
그의 말에 봉길과 화림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굳게 다졌다. 그렇게 잠깐의 애도를 마친 상덕 일행은 이제 일본군 묘 안으로 들어설 준비를 했다. 막중한 임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우리가 이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일곱 신령을 구해내야 해. 그들이 있어야 백두대간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
상덕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봉길과 화림도 그 뒤를 따랐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그들을 삼킬 듯 깊고 음침했지만 물러설 순 없었다.
깊은 동굴을 한참 걷던 그들 앞에 갑자기 밝은 빛이 드리웠다. 마치 등불을 켠 것처럼 환했다. 상덕 일행은 그 광경에 멈칫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여기가 과연 무슨 곳이지?"
화림이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봉길도 긴장한 채 손에 땀을 쥐었다.
그때였다. 눈부신 빛 속에서 점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사람의 형상을 한 빛 그 자체였다. 상덕 일행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이 나의 능력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인가?"
웅장한 음성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상덕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한반도의 수호자가 되고자 이곳 깊은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부디 당신의 힘을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빛의 형상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네 개의 공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왔다. 상덕 일행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너희가 가진 힘과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너희 각자가 자신의 공을 들고 전국 팔도를 돌며 일곱 신령의 가호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는 진정한 백두대간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상덕 일행은 공손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깨달음과 소명을 얻었다. 일곱 신령의 가호를 받는 일이야말로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이었다.
"하나 되는 나라와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꼭 해내야 해."
화림이 결연한 눈빛으로 중얼거리자 상덕과 봉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곧장 길을 떠나자꾸나. 지체할 시간이 없어."
빛의 인영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덕 일행의 가슴속엔 더없이 뜨겁고 강렬한 각오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이제 한반도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 마지막 여정에 나서고자 했다.
동굴을 빠져나온 상덕 일행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창공 위로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가슴 벅찬 희망과 용기를 내어 웃었다.
"자, 그럼 우리 각자 맡은 공을 들고 길을 나서 볼까?"
상덕의 말에 봉길과 화림이 힘차게 대답했다.
"넷!"
이윽고 그들은 각자의 방향을 확인한 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일곱 개의 신령을 찾아 길을 나서는 세 사람의 뒷모습은 한없이 당당하고 씩씩해 보였다.
상덕은 북쪽으로 향했다. 백두산과 묘향산을 잇는 태백산맥이 그의 여정이었다. 그는 힘차게 설악산과 금강산의 준령을 넘었다. 때로는 깊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며 수행을 이어갔다.
이윽고 그는 백두산 천지에 다다랐다. 호수를 응시하며 그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가 받아 든 공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두산 신령이시여, 당신의 넋을 받아 주소서!"
상덕이 외치자 호수 위로 거대한 용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덕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백두산 신령의 음성이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너는 이미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자로다. 나의 넋과 정기를 그대에게 심어주마.'
삽시간에 강렬한 기운이 상덕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백두산 신령의 가호를 받은 것이다.
한편 화림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거쳐 계룡산에 이르는 험준한 노정이었다. 그녀는 깊은 계곡과 암벽을 오르내리며 수행에 정진했다. 계룡산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에게 문득 노을빛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받아 든 공이 노을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였다.
"계룡산 신령이시여, 저에게 지혜를 내려 주소서!"
화림의 외침에 웅장한 바위산이 몸을 일으켰다. 눈부신 광채가 암벽에서 뿜어져 나왔다. 화림은 경외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계룡산 신령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그대는 지극한 용기와 의지를 지닌 자로다. 나의 혜안과 기개를 그대에게 심어주리라.'
그 순간 화림의 정신은 환하게 밝아졌다. 안개가 걷히듯 세상의 이치와 만물의 근원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동시에 몸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계룡산 신령의 가호를 받은 것이다.
봉길은 동쪽을 향해 떠났다. 태백산과 소백산, 속리산을 넘어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걸었다. 깊은 산중에서 수행과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깊은 계곡에 다다랐을 때였다. 시원한 물줄기를 받으며 봉길은 몸과 마음을 씻었다. 그때였다. 그가 받아 든 공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소백산 신령이시여, 제 몸에 건강과 기운을 심어 주소서!"
봉길의 기도에 광활한 산세가 요동쳤다. 맑은 기운이 솟구쳐 올라 봉길의 주위를 감쌌다. 그는 숙연히 무릎을 꿇고 신령의 계시를 기다렸다. 잠시 후 소백산 신령이 그에게 속삭였다.
'너는 곧은 절개와 굳센 신념을 지닌 자로다. 나의 기개와 끈기를 그대에게 불어넣어 주마.'
순식간에 봉길의 몸은 천근만근의 무게를 이기고 우뚝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건장해졌다. 기운과 용맹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그는 소백산 신령의 가호로 몸과 마음이 더없이 충만해졌다.
그렇게 상덕과 화림, 봉길은 각자 맡은 곳에서 수행을 마치고 신령들의 가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 가슴속엔 한 가지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함께 이 길을 걸었어야 할 영근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웠다.
'형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이제 형님도 편히 쉬시길 바랄 뿐입니다.'
상덕은 멀리 하늘 너머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화림과 봉길도 고개를 숙이며 그를 기렸다.
그렇게 잠시의 애도를 마친 상덕 일행은 이내 다시 길을 나섰다. 그들이 받아 든 공에는 이제 서너 개의 신령 가호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몇 개의 신령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두대간을 지키는 수호신들을 모두 만나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해야만 했다.
상덕 일행은 여러 고비를 넘기며 나머지 신령들을 찾아 헤맸다. 때로는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기도 했고, 때로는 극심한 햇볕과 비바람을 맞아가며 전진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내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이윽고 그들은 지리산 자락에 다다랐다. 천왕봉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던 상덕의 눈에 이상한 그림자가 어렸다. 산 중턱 어딘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였다. 상덕은 직감적으로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굴 앞에 다다른 상덕 일행은 숨을 집어삼켰다. 그 안에서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선 그들 앞에 거대한 불사조 형상의 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지리산을 지키는 수호령이다. 너희가 가진 공에 이미 여러 신령의 힘이 깃들어 있구나."
상덕이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답했다.
"산신령님, 우리는 한반도 삼한의 기운을 지키고자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부디 힘을 보태 주시옵소서."
지리산 신령이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수호자로다. 흔쾌히 나의 넋을 너희에게 심어주마."
이내 각각의 공에 지리산 신령의 기운이 어렸다. 붉은 기운이 선명하게 타오르며 빛을 발했다. 상덕 일행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남은 것은 한라산과 덕유산의 신령이었다. 일행은 제주도로 향했다.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보던 화림에게 문득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그녀가 손에 든 공이 신비로운 빛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한라산 신령이시여,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주소서!"
화림의 기도에 웅장한 광채가 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장엄한 기운에 압도된 일행은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한라산 신령의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직접 울려 퍼졌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며 이곳에 이른 너희들에게 내 축복을 내리노라. 나의 정기와 넋을 너희에게 심어주마.'
그들이 받아 든 공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오색찬란한 빛을 뿌렸다. 신령의 기운이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정화시키는 듯했다. 그렇게 한라산 신령의 가호가 그들에게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덕유산이 남아 있었다. 상덕 일행은 깊은 계곡과 병풍처럼 우뚝 선 바위산을 헤치며 덕유산 줄기를 타고 올랐다. 정상에 다다른 그들 앞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봉길이 무릎을 꿇고 그 앞에 공손히 절했다.
"덕유산 신령이시여, 부디 당신의 정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소서."
그러자 소나무가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한반도 곳곳의 기운을 지키는 수호자들이여, 나의 넋을 기꺼이 그대들에게 심어주리라.'
상덕과 화림, 봉길이 받아 든 공이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찼다. 덕유산 신령의 가호가 그들의 몸에 흘러들어 섞이는 듯했다.
이로써 그들은 백두대간 일곱 신령의 가호를 모두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천지간에 쏟아져 내리는 빛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아직 영근의 자리가 허전했지만, 그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해냈습니다, 상덕 형님! 우리가 해냈어요!"
봉길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덕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쳤다.
"그래... 수고했다, 너희들. 이제 우리가 진정한 한반도의 수호자가 된 것 같구나."
"우린 영원히 한마음 한뜻으로 이 땅을, 우리 민족을 지켜가야 합니다."
화림도 오열을 참으며 힘주어 말했다.